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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문화의 인위선택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정체성을 전통문화에 추구하기 시작한다. 세계화는 역설적으로 문명을 균질화하는 과정이기에, 이에 대한 반감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종종 보다 개성적이고 지역독점적인 속성에 이끌린다. 역사로부터 계승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들어온 문물과 사고방식에 의해 기존의 정체성이 옅어지는 몫만큼, 전통문화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높아져만 가는 것이다.

그러나 정체성이 이미 변질되었다면 어떨까? 전통을 바라보는 눈 자체가 바뀐 사람들은, 결국 과거의 유산인 전통문화를 자신의 사고방식에 맞게 재해석한다. 보존이 아닌 교체가 일어난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한국 사회는 문화 보존에 취약한 대신, 문화 교체(수용과는 다르다)에는 강한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 각각에는 일장일단이 있지만, 전통문화의 진정성을 논할 때만큼은, 역시 보존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전통이 갖는 지위는, 도심 속 녹지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유서 깊은 원예점(園藝店)에서 44대째로 나고 자란 조원사(造󠄁園師) 가와하라 노부아키(川原伸晃)는 『植物哲学』(식물철학)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사람들이 자연을 보며 치유를 느끼는 것은 야생의 자연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이 들어간 인위적인 자연을 마주할 때뿐이다. 잿빛 도시 속 숲과 잔디밭은 진정한 자연이 아니라, 썩어가는 가지, 가시덤불, 진창을 모두 제거하고, 인간에게 보기 좋고 편리한 부분만 남긴 편집본이다. 그것은 자연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이미지에 가깝다. 가장 인위적인 형태의 자연을 기호하는 현상. 나는 오늘날 한국의 전통문화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 가지 사례

익선동에서 본 석정

22월,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나는 일시 귀국하여 가족과 서울 익선동(益󠄁善洞)을 걸었다. 한옥을 개조한 카페와 잡화점이 늘어선 골목이다. 즐겁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쉬어갈 겸 어느 한옥카페에 들렀을 때 나는 굉장한 위화감을 받았다.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나타나는 중정(中庭). 자갈이 깔린 마당에 바위 몇 개가 교묘하게 놓여 있다. 인위적으로 세심하게 배치된 바위들은 조원(造󠄁園)에 관한 식견이 없는 나로서는 훌륭하게 보일 뿐이다. 바위마다 녹빛 이끼가 슬어 있는데, 그 또한 단정하게 양생된 공들인 이끼다. 대빗으로 그린 파도 문양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일본의 가레산스이(枯山水)를 방불케 하는 외관과 구성이다. 일본 선종(禪宗) 사원의 석정(石庭)과 정확히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미감의 문법이 분명히 겹쳐보였다. 확실한 것은, 한국적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도청도설(道󠄁聽塗說)로 가득한 일본인론(日本人論) 서적 판에서 참신한 시점을 제시한 이어령(李御寧)은 『縮み志向の日本人』(축소지향의 일본인, 19821982년)에서 한국과 일본의 자연관을 대비시킨다. 일본인은 자연을 자기 곁으로 끌어당긴다. 삼만 리의 강산을 몇 평의 돌과 모래로 압축해서 처마 앞에 가져다 놓는다. 가레산스이는 그 극단이다.

반면 한국인과 중국인은 노장(老莊)사상의 영향 하에서 자연관을 형성해왔다고 말해진다. 자연은 지배하거나 통제할 대상이 아니고, 인간은 그 안에 어우러져 사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선비나 승려들은 자연을 뜰 안에 재현하는 대신, 직접 산 속으로 들어갔다. 정자(亭子)를 세워 자연 속에 자리를 잡았지, 자연을 깎아 자기 쪽으로 옮기지 않은 것이다. 현대에도 한국인이 등산을 즐기고, 일본인이 원예를 즐기는 대체적인 경향은 이러한 자연관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 전통 한옥거리의 마당에는 새하얀 자갈 위에 바위을 세심하게 배치하고 이끼를 교묘하게 심어놓은, 굳이 말하자면 일본식 정원이 들어서 있다. 공간을 다루는 논리를 넘어서, 자연관 자체가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에서 본 분재

작년 여름, 광화문 소재의 모 회사에서 단기 인턴을 하던 때의 일이다. 한 달 남짓 잠깐만 일하는 단기직이었지만 신입사원처럼 환영을 받으며, 광화문 인근의 고급 한식당에서 입사 기념 회식을 하게 되었다. 처음 와보는 고급 한식당에서 받은 첫인상은 위화감이었다. 한국적 전통미를 표방하는 그 식당의 중앙에는 자갈이 깔린 위에 이끼와 바위가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에 정교하게 통제되어 구부러지고 축소된 분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분재. 영어로 bonsai. 요즘 한국적 전통을 테마로 한 인테리어나 소품 구성에 일본식 분재가 자연스럽게 끼어들어가 있는 것을 본다. 한국 전통에도 분경・분재 문화는 물론 있다. 조선 전기의 문인 강희안(姜希顏)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노송(老松)이나 노매(老梅)를 분재로 기르는 기법을 상세히 기술했다.

그러나 문화가 존재하는 것과 향유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지적되듯, 한국에는 일본과 달리 분재의 정자(整姿󠄁)를 전문으로 하는 장인이 존재하지 않았고, 「본사이초」(盆栽町) 같은 지명도, 수백만 회원을 자랑하는 분재 협회도 없었다. 기법을 기록한 문헌이 남아 있다는 것과, 그것이 하나의 문화로서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

한국의 분재 예술을 즐기는 현대인들은 일본식 분재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다. 그러나, 식물 본연의 생장 방식을 존중하여 자연미를 추구하는 조선적 미학과, 나무의 생장을 극도로 인위적으로 통제하여 조형한 일본적 미학은 방향성이 너무도 다르다. 일본에서 자연을 축소하고 통제하는 미학의 극단으로서 발전한 분재가, 한국에서는 일부 문헌에 언급이 있을 뿐 현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향수되기 시작한 분재가, 「한국 전통」의 구성 요소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한국적이라고 느끼는 감각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백제와 간테이류

멍 때리며 유튜브 추천영상을 물색하고 있던 어느 날의 일이다. 커뮤니티 게시글에서 「백제소주」라는 흥미로운 이름의 전통주 광고를 보았다. 한국 전통주의 보급 및 발전을 위한 인식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 인플루언서와 전북 부안에 기반한 내변산양조장의 합작 상품이라고 한다. 전통주와 백제……, 백제(百濟)는 의심의 여지 없이 고대 한반도의 왕국이니, 한국적 전통의 가치를 표방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百濟燒酒」(백제소주) 네 글자가 간테이류(勘亭流) 서체로 적혀 있는 게 아닌가?

간테이류는 에도시대 가부키(歌舞伎) 극장의 호객용 간판에서 쓰이던 서체다. 획이 두껍고 글자 끝이 둥글게 퍼지는, 에도의 대중문화와 분리할 수 없는 시각 언어다. 한국 술을 한국 고대 왕국의 이름으로 팔면서, 한자를 에도의 서체로 적는 것이다. 뛰어난 학문과 공예로 후세에 전해지는 백제의 기품 있는 이름을, 에도시대 일본 서민들의 유흥을 상징하는 글씨를 적는 이질감, 부조화. 그 서체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따지는 사람도 다수는 아닐 것이다. 그저 「고풍스럽고 묵직한 붓글씨」로 소비될 뿐이다.

전통의 인위선택

세 가지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같다. 동양적이고 고풍스럽고 정제된 것을 만들고 싶다는 예술적 기획 아래,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요소들이 마구잡이로 조합된다. 일본의 석정도, 분재도, 간테이류도, 각자의 일본적 맥락에서 분리되어 동양적 전통미(傳統美)라는 범주로 합류한다. 동양문화로 보이는 요소는 다 한국적 전통문화일 수 있다는 안일한 인식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서구 오리엔탈리즘이 만든 환상에 당사자인 한국이 휩쓸려버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이 전통의 보존보다는 교체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극도로 세계화된 시대에 부랴부랴 다시 전통을 향해 손을 뻗어보아도, 그 손은 이미 세계화의 영향으로 얼룩져 있어, 말하자면 뒤섞인 전통의 인위선택을 조장한다. 소비자가 더 아름답다고 느끼고, 디자이너가 더 세련되다고 판단해서 선택한다. 한국인들 스스로의 손에 의해 명쾌한 구분 없이, 어떤 요소는 살아남고 어떤 요소는 사라진다. 그 인위선택의 결과로, 일본적 요소가 한국의 전통문화에 부채(負債)처럼 조용히 축적되고 있다.

그 어떠한 모방과 표절의 자각도 없이 이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아연하게 된다. 단지 현대인의 지극히 소박한 감성에서, 더 예쁘고 더 정갈해 보이는 것을 고르다보면 그렇게 된다. 변화된 한국인들의 현대적 인식 속에서, 진짜 전통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인들의 손에 의해 내동댕이쳐지고 도태되어간다.

나가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모순을 언급해둔다. 한국인은 세계적으로 봤을 때 자국 전통문화의 고유성에 대해서 대단히 민감한 편이다. 문화의 고유성을 침범당했을 때 반발하는 것은 독립적인 문화를 일궈온 문명인으로서의 권리이다. 그러나 실상은 가레산스이를 닮은 정원을 한옥 마당에 들이고, 가부키 서체로 백제를 표현하고, 일본식 분재를 한국 전통요소로 배치한다. 경험적으로 볼 때, 이러한 전통 개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문제제기를 하여도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서양에서 바라본 동양은 다 비슷비슷해 보일 것이다. 소위 「일본인론」 서적들은 서양과의 대비에만 몰두한 나머지, 진정으로 일본적인 요소를 특정하는 데에는 실패한 것이 많다. 동양문화권 내부의 차이는, 외부에서 보면 미세하고, 내부에서 보아도 상당한 식견을 요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자국 전통을 논하려거든 우선 스스로가 자국 전통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막연한 동양풍 요소 중에서 어디까지가 한국적인 것인지 분별할 수 있는 안목 정도는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분별 없이 전통을 부르짖는 것은, 기만적이고, 무엇보다 자기 출자(出自)에 대한 모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