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집을 나와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이유가 뭘까. 숨막히는 원룸과 달리 개방감 있는 공간이어서? 보는 눈이 많아1 딴짓을 하기 어려워서? 질문을 바꿔보자. 내 경우에는 「왜 패밀리 레스토랑을 선호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나를 바깥으로 내모는가?」가 더 적절하다. 실내가 비정상적으로 춥기 때문이다. 일본의 목조 임대주택, 평당 건설비용이 한국에 비해 최대 배나 된다는 일본 주택 메이커 업계의 냉혹한 현실로 인하여, 단열을 사실상 포기한 주택을 찍어내고 있는 탓이다. 난방 기능을 겸한 벽걸이 에어컨을 틀면 실내가 순식간에 건조해져 진퇴양난에 빠진다. 그렇다고 에어컨을 끄면 순식간에 골방으로 원상복귀한다. 이것이 월 벚꽃이 피는 무렵에도 나를 바깥으로 내모는 직접적 원인이다.
일본의 패밀리 레스토랑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는 풀네임은 장황하여 매번 언급하기 번거로우니, 이하 일본식 약어 「화미레스」(ファミレス)를 채용하겠다.지금까지 모호하게 「화미레스」라고 뭉뜽그렸지만, 실제로 내가 방문하는 곳은 스카이라크(すかいらーく) 그룹의 가스토(ガスト; Gusto)와 조나산(ジョナサン; Jonathan’s) 뿐이다. 순전히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지 특별한 의미는 없다. 독보적인 가성비 체인으로 유명한 사이제리야(サイゼリヤ)는 이용시간 제한이 있기 때문에 작업공간으로서는 부적합하여 논외이다.
근래 들어 젊은이들의 발길이 줄어들며 예전만큼 업황이 좋지는 못한2「화미레스」지만, 그럼에도 적당히 수다를 떨며 시간 때우며 보내기 좋은 공간인지라, 도심부의 「화미레스」 앞에 장사진(長蛇陣)이 쳐 있는 광경을 보는 건 어렵지 않다. 내가 거주하는 도쿄 교외의 한적한 마을에서는 입장 대기를 할 일이 애초에 거의 없다. 이는 곧 점내에서 자리를 점거하고 장시간 작업에 매진하는 어쩌면 민폐일 수도 있는 행위가 묵인된다는 의미이다. 특히 나는 드링크바 하나만 주문해서 부동명왕처럼 머무른다.3
「화미레스」를 들락거린지 어느덧 년이 넘었다. 지금부터는 잡설은 접어두고 이 글의 타이틀을 회수하기 위해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드링크 바
내게 있어 「화미레스」의 존재 의의는 드링크 바이다. 단품으로는 엔대에, 요리와 함께 주문하면 엔대, 아예 드링크 바를 포함하는 메뉴를 주문하면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이다. 종 이상의 음료를 제한 없이 제공한다. 커피, 말차라떼, 코코아, 다양한 차, 과즙, 청과즙, 아이스티, 청량음료 등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진다. 얼음도 기본으로 제공된다. 셀프 바 형태라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떠 마실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아이스티만 무한 리필해 마시고 있다.
이 모든 서비스가 스타벅스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하다. 무한 리필이니 본전을 찾겠답시고 무리해서 리필을 반복하는 사람을 간혹 보나, 내 기준으로는 공간 제공만으로 이미 충분히 합리적인 가격대로 보인다. 하지만 일반적인 고객은 나처럼 드링크 바 단품만 주문하지 않고 요리를 함께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스카이라크 계열의 「화미레스」는 요리 값이 이상하게 비싸기 때문에 드링크 바에 연연하는 태도가 다소나마 이해는 간다.
드링크 바의 특징은 바닥이 매우 끈적거린다는 것이다. 매일 청소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누군가 음료를 쏟고, 당류가 잔뜩 들어간 콜라나 멜론소다를 쏟으면 간이적인 물청소를 아무리 해도 끈적거림이 가시지 않는다. 이른 아침에 방문해도 끈적거리는 걸 보면 이미 손쓸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 게 아닐까.
古床や 오랜 바닥에
客の踏みこむ 손님이 내디디는
靴の音 신발의 소리
고양이 로봇
아무리 내가 염치 없기로서니, 항상 드링크 바 단품만 달랑 시키는 건 아니다. 아침 일찍 방문하여 조식 세트를 주문하면 스프와 드링크 바가 딸려오기 때문에 계란 후라이(혹은 스크램블 에그), 베이컨, 샐러드가 포함된 식사를 주문하기도 한다.
좌석의 태블릿 를 통해 주문을 넣으면, 웬 고양이형 로봇이 말끝마다 냥냥을 붙이며 경쾌한 노래와 함께 요리를 가져와준다. 용케도 모든 장애물을 피하고 좌석까지 가져다주는데, 실시간 사물 인식을 하는 것인지 하드코딩된 점내 구조를 따라 이동할 뿐인 것인지는 관찰만으로는 알기가 어렵다(둘의 하이브리드일 가능성이 높다). 「화미레스」는 점내 구조가 조밀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진로방해를 당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등 사소한 문제가 있기는 하나 전반적인 고객 경험은 매끄럽다.
불과 년 전까지만 해도 휴머노이드 로봇 대국이었던 일본은, 혼다의 아시모(ASIMO) 개발 포기를 기점으로 미・중・한에 완전히 추월당하고 말았다. 스카이라크 계열의 「화미레스」에서 채용하고 있는 고양이형 서빙 로봇 BellaBot은, 현재 일본에서 인간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아마도 유일한 로봇일 것이다.[^5]
알바 순회
알바가 주기적으로 점내를 순회하며 고객들을 한 번씩 둘러보고 떠나는데, 아마도 객단가가 낮은 고객의 체류시간을 줄이기 위한 사측의 매뉴얼인 듯하나, 교외의 널널한 점포에서는 웬만해서는 실질적인 주의 행위로 이어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솔직히 별 타격이 없다. 본사에서 파견된 점주로 보이는 남성이 근무하는 시간대에 방문하면 조금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기는 하나 단순히 나의 착각일지 모른다.
점내 화장실
초고령화 일본 사회의 단면은 「화미레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평일 낮 시간대의 교외 점포는 도심형 노인정이나 다름없다. 스카이라크 그룹은 아예 세 이상 고객에게 상시 할인을 제공하는 「플래티넘 패스포트」라는 우대 제도까지 운영하고 있으니, 은퇴 후 무료한 여생을 보내고 있는 고령층에게 이만한 아지트도 없을 것이다. 일본의 고령층 중에는 썩은 눈을 하고 파칭코에서 고도경제성장기를 거치며 쌓은 재산을 꼴아넣거나 생활수당(생계급여)을 축내는 안타까운 인간들도 꽤 있기 때문에, 「화미레스」에서 사교 활동을 하며 여가를 보내는 노인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문제는 고령층 고객의 범람은 곧잘 화장실 소변 범람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노인 비하의 의도는 추호도 없으나, 현실로 들이닥친 실질적인 문제로서,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앞에 서면 여지없이 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수상한 웅덩이를 마주하게 된다. 잔뇨인지 조준 실패인지 알 길이 없으나, 발생 과정이 어떠하든 바닥에 고인 액체는 의심의 여지 없이 소변임이 분명하다. 신발 밑창에 소변이 묻지 않도록 까치발을 들고 볼일을 봐야 하는 것이다.
夜時雨を 겨울 밤비를
垂らして広し 흘려서 흥건한
淀み哉 웅덩이로다
결론
이 글도 「화미레스」에 다섯 시간째 머무르던 무렵에 작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어느새 글을 완성했으니 슬슬 자리에서 일어날 때가 되었나보다.